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영삼/부정적 평가 (문단 편집) === 측근, 친인척 비리 === >'''우째 이런 일이...'''[br]ㅡ 1993년 [[최형우(정치인)|최형우]] 민자당 사무총장 아들의 대입 부정사건을 듣고 >'''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[[김현철(1959)|아들]]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.'''[br]ㅡ 김현철 비리 수사 중 대국민 사과담화 中 부정부패 타파를 외쳤지만, 정작 본인의 측근 비리, 친인척 비리를 피해가진 못했다. 수십년 간 김영삼의 금고지기 역할을 하던 집사 장학로가 구속된 것을 시작으로 주변 측근들과 많은 [[상도동계]] 정치인들의 부정부패 의혹이 제기되었다. 특히 임기 후반 아무런 공식 직함도 없는 둘째 아들 [[김현철(1959)|김현철]]이 국정에 전방위적으로 개입하면서 사실상 소통령으로 군림했다는 것이 폭로되자 김영삼은 지지율이 폭락하게 된다. 결국 김현철이 부정부패 혐의로 구속되면서 김영삼은 극심한 [[레임덕]]으로 국정을 이끌어갈 동력을 상실하고 사실상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다. 그리고 급박한 경제 상황에도 리더쉽을 상실한 김영삼 정부는 능동적인 대처를 하지 못하고 결국 [[외환위기]]가 폭발하여 지지율이 나락으로 떨어진다.[[http://hankookilbo.com/v/09cd6275e94f401dbcf9e4ef6307a989|#]] 일단 김영삼 '''본인''' 자체는 좌우 관계없이 청렴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.[* 이건 같은 [[양김]]인 [[김대중]]도 마찬가지다. 김대중은 [[노태우]] 대통령에게 [[제14대 대통령 선거|대선]] 당시 선거 지원금을 받은 적은 있으나, [[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]] 당시 이를 자백 및 폭로하였고 그 외에는 부정부패 사건이 없다.] 그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도 'YS가 워낙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니 돈 욕심은 없었지' 라는 식으로 평하긴 한다. 다만 동지이자 라이벌인 김대중처럼 아들의 비리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라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다.[* 당시 김현철은 [[국민의힘]]의 씽크탱크가 된 [[여의도연구소]]를 창설하고 [[종합금융회사|종금사]] 설립 허가 및 [[YTN]] 인사에도 관여하는 전방위적인 활약을 펼쳤는데, 후임인 김대중의 아들들, 특히 신규 가입당원 1/3 이상을 유치했을 만큼 활동이 활발했던 차남 [[김홍업]]은 김현철의 일을 교훈 삼아 상대적으로 처신을 신중히 한 편이었다. 문제가 생길 만한 자금을 가급적 피했기 때문에, 정권 말 검사들이 의욕적으로 달려들었던 것에 비해 성과는 적었다고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